요즘 아주 시끌시끌한 영화 <노아> 보셨나요? 러셀 크로우가 ‘노아’로 제니퍼 코넬리가 ‘나메’, 엠마 왓슨이 ‘일라’ 역으로 분한..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를 시나리오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노아의 방주로 만든 헐리우드 판타지 재난 스릴러” 정도의 평가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그동안 짬봉닷컴을 통해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정치적인 문제를 꼭 광고까지 해서 밝혀야 했나?기독교가 ‘개독’의 오명을 씻고, 젊은이들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방법구멍 뚫린 교회 ‘헌금 봉투’와 나이대별 헌금에 대한 고찰 등을 통해 기독교, 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해당 글에서도 밝혔듯이, 전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인입니다.(나이롱으로 불리긴합니다만..) 또한 그 대척점에서 현시점에 우리나라 기독교의 위치를 걱정하는 젊은이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그런 1인으로서 ‘노아’를 보면서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되었는데요. 그렇다고 제가 기독교를 대단히 잘 아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이런 스탠스도 있구나 하는 시각에서 보면 어느정도 ‘꺼리’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노아의 방주는 몇천년이 지난 현시점까지 그 ‘흔적’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헐리우드 입장에서 꽤 매력적인 스토리였을 것입니다.

종교개혁, 펄스트 임펙트

역사적으로 그리스드교는 많은 부침과 변화를 겪으며 이어져왔습니다. 이른바 ‘종교개혁’인데요. 영화 <노아>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도 그런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을 떠나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은 세상에 많은 비를 내립니다. 이를 통해 인간 세상은 ‘정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 신실한 믿음을 갖고 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살아남아 더욱 신께 의지하고 그 분의 뜻데로 살고자 노력했으니… 노아의 방주 사건을 인류 첫번째 종교개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후 노아에서 시작된 그 자손들은 다시 번성하게 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노아가 살았던 시점이 기원전 2~3천년전이이므로.. 그후 4~5천년이 흘렀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현 시점에서 ‘노아의 방주’ 이전을 영화를 통해 복귀하자면… 다시 살아남은 인류는 first impact(에반게리온 용어를 빌자면..;) 이전보다 훨씬 더 타락하고 오만해졌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과는 상관없어 박스치고 넣어보는 “문화의 힘”
노아를 잘보면 꽤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런거 따지면 애초에 할리우드 영화 못본다..란 말이 나올것 같긴 합니다만.;; 암튼, 모든 등장인물이 백인에 영어를 구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이자 현 인류의 조상 역시 백인에 영어를 쓰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영어쓰는 백인의 우월함과 현시점의 패권주의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의식하던 무의식이건)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러셀크로우는 항상 이런 영화에만 나오니.. 현대 배경에 등장하면 꽤나 어색할 듯…;

종교개혁, 세컨드 임펙트

노아 이후 시간은 흘러흘러.. 바야흐로 두번째 종교개혁입니다.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모두가 이름정도는 들어봤을 ‘예수’에 의해서입니다. B.C. 6년경 로마 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헌신인 예수님입니다. 당시 세계는 로마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죠. 갈릴리 지역 역시, 지배자 로마인과 타락한 종교인 바리세인의 폭정에 의해 민중은 신음하고 있었다 합니다.

예수님은 민중의 편에서 더 낮은 곳에 귀이하며 지배 계급과 종교의 부당, 불편에 온몸으로 맞섰습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십자가형이었죠. 이를 기점으로 그리스드교는 민중을 중심으로 서구세계에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고, 로마를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second impact 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등장한 이후의 내용을 신약에 담고 있습니다.(구약은 그 이전의 이야기로 그리스도교와 유대인의 유대교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당시 실제 예수님의 모습은 이랬을거라…고 합니다.

 

종교개혁, 떨드 임펙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또 시간이 흐릅니다. 14~15세기. 어쩔도리 없이 우매하고 그러기에 오히려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인간은 또다시 타락합니다. 이른바 면죄부, 마녀사냥, 십자군 전쟁을 포함해 성직자들의 타락들이 그것입니다. 이런한 내용은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나 문학작품 등의 암울한 중세시대로 잘 표현되어 있죠.

1517년 마틴루터는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논제’를 발표합니다. 이것이 Third impact. 이를 통해 그리스드교는 ‘로마카톨릭’에서 분화되어 청렴과 민중에게 휘귀할 것을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로 갈리게 됩니다. 전자를 구교, 후자를 신교 혹은 개신교로 부르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전자가 천주교, 즉, 성당이되었고, 후자가 기독교, 교회가 된 것이죠.

마녀사냥. 다만.. 이게 과연 옛날 이야기일까요..?

그리고 또다시 500여년이 흘러 뱌야흐로 21세기입니다. 현재 신교와 구교의 모습은 어떤가요?

결론은 없습니다.